희생자의 궤적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는 각지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고, 일본 전국에서 1만 9,689명, 이와테현에서만 5,141명이라는 많은 고귀한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아직도 행방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진재해 쓰나미로 희생되신 분들께 진심으로 애도의 마음을 표함과 동시에 명복을 빕니다.
이 코너에서는 지진재해 쓰나미로 희생되신 분들의 행동을 되돌아봅니다.
※증언자에 대해서는 증언 당시의 나이를 표기하고 있습니다.
Case-1 쓰나미 도달 전에 반드시 물이 빠진다고는 할 수 없다
바닷물이 빠지면 소리를 쳐, 금방 도망쳐 올테니까...
“쓰나미가 오기 전에는 반드시 물이 빠진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3월 11일 15시 넘어서 이와테현 오쓰치초 중심부의 고지대에서는 대형 쓰나미 경보는 발령되어 있었지만 바다를 20분 동안 바라보아도 해면이 움직이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물이 빠지지 않는다. 정말 쓰나미가 오기는 올 것인가?" 그런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고지대에서 내려가는 주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때 항구 바로 앞 바다의 해면이 크게 솟아올랐다.
KㆍT씨(남성 50세)는 한 순간 말을 잃었다.
"쓰나미다!"라고 외쳤을 때는 탁류가 마을 중심부로 밀려와 자신의 발밑까지 도달해 있었다.
학교에서 연락이 있을 줄 알고 집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희생된 어머니가 있었다.
학교로 마중을 가는 도중에 목숨을 잃은 아버지도 있었다.
Case-2 달아나면 돌아오지 마라
최초의 쓰나미는 낮았다. 하지만...
3월 11일 15시 넘어서 이와테현 야마다마치 중심부의 고지대에서 본 최초의 쓰나미는 낮았고, 높이 3m의 방조제에 걸려 되돌아갔다.
"야마다는 이번 쓰나미에서도 괜찮다"라는 말이 들렸다.
“방조제를 넘지 못하는 쓰나미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안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지품과 귀중품을 가지러 고지대를 내려가, 집이나 직장으로 돌아갔다"며 SㆍY씨(남성 76세)가 증언한다.
하지만 고지대에 남아 있었던 IㆍS씨(남성 59세)는 약 10분 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남편이 달아나지 않겠다고 하니까...
평소부터 "누님"이라고 부르면서 경모하는 부인에게 "쓰나미가 오니까 달아나세요!"라고 외쳤다.
부인은 2층에서 손가방과 덧옷을 가지고 내려왔다.
하지만 “남편이 달아나지 않겠다고 하니까.”라며 다시 2층으로 올라가고 말았다.
그때가 이승에서의 작별인사가 될 줄이야….
AㆍT씨(여성 85세) 야마다마치
Case-3 강을 거슬러온 쓰나미...
이런 산 속에 왜?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시 야하기초 모토야시키 지구, 사방이 깊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히로타 만으로 흘러가는 게센가와 강의 지류 야하기가와 강이 흐른다.
3월 11일 지진 발생에서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 KㆍS씨(여성 77세)의 잡화점에 한 남성이 뛰어 들어왔다. "쓰나미다. 달아나!"
반신반의하면서 고지대로 향했다. 곧바로 쓰나미 끝자락이 발까지 도달했다.
쓰나미는 게센가와 강을 8km 이상이나 거슬러 올라왔다. 지류인 야하기가와 강도 거슬러올라 여러 명의 행방불명자가 발생했다.
"연안부라면 고지대로 달아나겠지만, 여기는 산간부. 아무도 쓰나미가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쇼와 산리쿠 지진 쓰나미(1933년)를 경험한 부모한테서도 듣지 못했다. 자신의 칠레 지진 쓰나미 경험 때도 야하기가와 강에는 오지 않을 거라 믿고 있었다…."
배가 한 순간에 전복
배를 계류하고 있던 로프를 잡아보니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었다. 쓰나미의 영향으로 이미 물이 빠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둘이서 배에 올라탔다. 로프가 단단히 죄여 있어서 풀리지 않는다. 서둘러서 부엌칼로 잘라 배를 띄웠다. 어항 내 물은 초록빛으로 흐려졌고, 방파제 끝에는 바닷물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빠지는 파도의 기세가 너무 강해 배를 조종할 수가 없다. 배가 떠내려가기 시작했고 어찌할 도리가 없다. 초조와 공포. 순간, 뱃머리 끝이 앞바다 쪽으로 똑바로 향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단숨에 엔진 회전을 높여 전속력으로 지토세네(수심 100m) 근처까지 달아났다.
잠시 후 흰 물보라를 일으키며 곤파쿠 쪽으로 밀려가는 파도가 보였다. 그것이 벤텐자키 쪽에서 높아져 방파제의 빨간 등대를 삼키고, 그 높이까지 들어올려진 배가 순식간에 확 뒤집히는 모습이 보였다.
Case-4 과거의 경험만으로는 다 추정할 수 없다.
3층으로 올라가면 괜찮다.
이와테현 오후나토시 시가지에서는 1960년의 칠레 지진 쓰나미로 53명이 희생됐다. 대피훈련도 거듭해 왔고, 쓰나미에 대한 의식은 높았다. 칠레 지진 쓰나미와 1933년 쇼와 산리쿠 지진 쓰나미, 두 번의 쓰나미를 경험하고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3층짜리 집을 만든 YㆍT씨(남성 86세)는 생전에 늘 "3층으로 올라가면 쓰나미를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 있으면 괜찮다."
고집을 피우는 노인을 설득하는 동안에달아날 타이밍을 놓쳐 목숨을 잃은 여성도 있었다.
HㆍH씨(여성 57세) 야마다마치
Case-5 안심감은 분명히 있었다...
3m 쓰나미라면 걱정 없다.
이와테현 미야코시 다로 지구의 자택 근처에서 큰 흔들림을 느낀 SㆍT씨(여성 74세)는 귀가한 남편 SㆍM씨(남성 82세)에게 대피하자고 촉구했다. 하지만 SㆍM씨는 움직이지 않는다. 조금 전 방재행정무선으로 쓰나미의 높이를 들은 것이다.
"3m 쓰나미라면 걱정 없다." 그것이 이유였다.
막무가내로 움직이지 않으려는 남편을 설득하는 일도 마침내 포기하고 혼자서 고지대로 향한 SㆍT씨는 간신히 살아났다. 쓰나미는 높이 10m의 거대한 방조제를 넘어 남편이 있는 집을 쓸어버렸다….
훌륭한 방조제가 지키고 있다는 안도감은 분명히 있었다. 현지에서는 매년 대피훈련이 있었지만….
공민관 직원이었던 K씨.
동료들과 일단 고지대로 대피하려고 했지만,"자신이 달아날 수는 없다"고 말하며,시민을 유도하는 일에 임하고 있었다.
차량 이동 중에 피해를 입음
이와테현 노다무라의 해안가에서는 차로 이동 중에 쓰나미에 휩쓸린 희생자가 있었다. AㆍS씨(남성 80세)는 구지시의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구지의 고등학교에 다니던 UㆍM씨(여성 17세)는 삼촌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후다이무라에 귀가하던 도중이었다. 일단은 대피했었지만 어머니를 마중하러 간 노다무라의 KㆍH씨(남성 21세)도 있었다.
Case-6 가족을 구하기 위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
고령자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쓰나미로부터 구하려다 죽은 사람도 많았다.
지진이 발생한 시점에는 산 쪽의 자택에 있었던 이와테현 미야코시의 SㆍS씨(여성 75세). 그러나 간병이 필요한 어머니에게 가려고 바다 쪽의 친정집을 향해 필사적으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오지 못했다.
이와테현 가마이시시의 KㆍK씨(여성 79세)는 지진 발생 후 재해 수 년 전부터 휠체어 생활을 해 오던 남편 KㆍI씨(남성 83세)와 함께 대피하려고 했지만, 두 사람이 함께 대피하지는 못했다.
쓰나미가 지나간 후 이번엔 화재가 발생
집 앞에 서 있던 버스가 둥둥 떠올라 도로를 막고 있었다. 쓰나미는 달아나지 못한 사람들을 눈앞에서 삼켜버리고 있었다.
쓰나미가 지나간 다음, 이번엔 화재가 발생해 많은 집들이 불탔고, 산에도 불이 번져 사방팔방에서 불길이 솟았고, 밤에는 벌겋게 집과 산이 불타올라 “다노하마는 이제 전멸인가.”라는 생각에 전신의 힘이 빠지고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SㆍH씨(여성 65세) 야마다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