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동안의 "빗살 작전"
ー그 현장에서 작성된 국장 메모ー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 당시 도호쿠 지방정비국 재해대책실의 책임자로서 진두지휘를 했었던 당시의 도호쿠 지방정비국장은 재해 발생 이후 2년에 걸쳐 매일 매일의 결단 내용, 지시, 보고, 기자회견 등을 기록으로 계속 남겨왔습니다. 파일 5권, 약 3,000장에 달하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여기서는 그중에서 재해 발생 후 7일간 실행되었던 “빗살 작전”의 진행과 관련된 부분을 모아서 소개해 드립니다. 파괴된 잔해물이 막고 있는 재해지로의 길을 확보하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사태에 맞서 싸웠던 도호쿠 지방정비국의 발자취를 볼 수 있습니다.
- 도로 확보 오퍼레이션 -
7일 동안의 "빗살 작전"
ー그 현장에서 작성된 국장 메모ー
1 국장의 메모 3월11일15시15분 재해발생 직후에 기재
전 직원에게 최초의 지시
지진발생 직후의 재해대책실에서, 도호쿠지방 정비국장(이하 국장)이 최초 30분 동안에 쓴 메모.
아직 정보는 올라오지 않았지만, 해구 형 거대 지진이 발생한 것을 확신하고, 최초에 해 두어야 할 중요사항을 정리한 것.
국장은, 지진발생으로부터 30분 후인 15시15분에, 살기가 도는 전 직원을 향해 마이크를 잡았다.
첫 마디는 “어이, 모두, 좀 들어요. 경험한 적이 없는 것 같은 지진이 온 것은 확실하지만, 해야 할 일은 늘 하던 훈련(늘 하던 지진발생훈련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대로. 침착하게 해 가죠” 제정신이 돌아와, 침착함을 되찾은 직원들의 얼굴이 있었다.
그리고 비상체제에 들어간 것을 선언하고, 이 메모에 의거하여 최초의 지시를 전했다.
≪메모 개요≫
- 메모의 1〜3에는, 최초에 해야 할 것으로, 청사와 직원의 안부확인, 정비국이 관리하는 도로 등 시설의 피해에 관한 정보수집, 정보발신에 대해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매스 미디어와 국토교통성 등과의 연락창구 일원화를 꾀할 것이 기록되어 있다.
- 메모 4는, 이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확정하기 위한 정보를 올려주길 바란다, 는 의미로 쓰인 것. (내놓아야 할 지시를 결정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구하여 메모를 썼다, 고 해석했습니다.) 체제(도호쿠지방 정비국 체제로 해석) 및 리에종※의 파견인원수에 대해서는 메모를 작성하고 있는 도중에 확인이 되어, 확정메모로 기술되어 있다. 한편 ②의 청사에 대한 기술은 이 시점에서의 추측. “작은 파괴(계단 정도)는 있지만, 업무에 지장 없음”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는 벽과 천장이 무너졌고, 엘리베이터와 난방도 파괴되어 복구 불능이 되어 있었다.
- 국장이 가장 판단을 망설인 사항이, 방재국장이 진언을 한, 방재헬리콥터 “미치노쿠 호”를 직원의 동승 없이 이륙시키는 것의 가부. 직원의 동승 없는 헬리콥터의 운용계획은 당시 없었지만, 한시라도 빠른 상황파악이 열쇠가 되기 때문에, 이륙을 허가. 준비 중 문자를 지운 선은 그때의 것).
※큰 재해 시에, 정보수집, 연락요원으로 재해지에 파견되는 “재해대책 현지정보 연락원”을 말한다. 리에종은 프랑스어로 “잇다, 다리를 놓기”라는 뜻. (참고;도호쿠지방 정비국 홈페이지)
당초, 방재헬리콥터 “미치노쿠 호”는 이륙준비 중이라는 보고를 받아, “준비 중”이라고 기재. 그 후, “공항 클로즈 때문에” 관제탑의 허가를 받을 수 없다는 보고를 받지만, 조기상황확인의 중요성에서, 자신의 책임으로 직원의 동승 없이 이륙을 결단하여, 이 문자들을 지우고 있다.
2 국장의 메모 3월11일19시00분 기재
국토교통대신과의 화상회의용 메모
2011년3월11일22:00부터 국토교통대신과 화상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국장으로서의 보고 준비로, 19:00부터 쓰기 시작한 휴대용 메모.
화상회의 직전까지 최신 정보로 고쳐 쓰고 있기 때문에, 수정 흔적이 많이남아 있다.
≪메모 개요≫
- 메모 ①에서는, 자체 체제에 대해 이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 단속적으로 여진. 정비국의 자가발전 장치, 마이크로 방재무선시스템은 건재.
- 사무소 등에 모두 연락. 그러나 가마이시 항만 사무소는 2층까지 침수, 게센누마 유지 출장소는 지붕까지 침수. 재해 때문에 3개 사무소, 1개 출장소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 직원의 안부확인에 대해, 19:00 시점에 60% 좀 넘게、22:00의 화상회의 직전에 85% 완료.
- 직원 가족의 안부도 확인 중이었지만, 22:00까지 아무 정보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보고사항에서 부득이 삭제.
- 메모 ②에서는, 미야기현과의 연락상황에 대해 기재. 무라이 지사와 직접 연락이 되어, “도호쿠 도(道) 등, 구원 루트를 확보”해 주기 바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 메모 ③에는, 쓰나미 경보(대 쓰나미) 발령 중이기 때문에 “태평양연안의 쓰나미 침수구역은 점검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되어 있다.
- 메모 ④에는, 보고의 끝에, 국토교통대신에게 의견을 보고하려고 결심한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한신 아와지 대진재’와는 다른 쓰나미형 재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며, 국토교통성의 통상 재해대응에서 벗어나지만, (1)지자체에 대한 응원과(2)구원 루트 확보의 우선 실시를 진언할 생각이 쓰여 있다.
당일 일몰까지에 얻은 정보에서, 내일 이른 아침부터의 정비국 활동이 구급구명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판단해, 국토교통성 대신에게 “내일부터가 승패”이며, 매뉴얼을 초월한 특별한 대응을 허가 받자는 생각을 기록하고 있다.
3 국장의 메모 3월12일0시15분 기재
심야에 쓰인 최초의 명령서
국토교통대신과의 화상회의를 거쳐, 다음날 3월12일에 해야 할 대응에 대해 지시한 최초의 명령서.
먼저, 3월11일23:33에 마이크로 전원에게 지시한 후, 정확을 기하기 위해, 날짜가 바뀐 12일 0: 15에 다시 써서 배포한 것.
≪메모 개요≫
- 첫머리에, (전제)라고 기술. 본래, (상황)이라고 써야 할 곳에, 눈 때문에 헬리콥터를 센다이에서 북쪽으로는 띄우지 못해,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전제”로서 쓴 것. 태평양연안이 주된 재해지라는 전제에 서서, 낙관적으로 준비할 것이 아니라, 시가지가 괴멸되고, 도로도 항만도 사용하지 못하며, 희생자 다수라는 최악의 사태를 상정하여 준비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 메모 1에서는 정보수집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3월11일 중에 중부, 긴키, 시코쿠의 3개 지방 정비국에서 방재 헬리콥터를 불러들이고 있어, 내일부터는 도호쿠지방 정비국 소유의 “미치노쿠 호”를 포함하여 4기 체제로 정보수집에 대응한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 메모 2에서는 구원・우송 루트의 확보에 대해 정리하고 있다. 이 메모에 의거하여, 처음으로 “계개”※ 를 지시함과 동시에, “업자・기자재 확보”를 얼마나 할 수 있는가가 생사를 좌우한다는 지시가 있었다.
- 메모 3에는 현・지자체에 대한 응원에 관해 기술되어 있다. 아오모리,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의 4개 현에는, 종래 연락원으로서의 리에종의 역할 이상의 대국적 판단이 가능한 레벨의 직원을 파견하도록 지시한 것, 또 이례적인 일이지만, 시정촌에 리에종을 파견하여 “무엇이 부족하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조사를 시킬 것을 계획하여, 그 요원을 이미 선발했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긴급차량 등의 통행을 위해, 급히 최저한의 잔해 처리를 하고, 간단한 높낮이차 수정 등으로 구원 루트의 길을 트는 것. (국토교통성 홈페이지에서)
“계개”란, 이른바 “복구”와는 다르며, 인명에 관한 긴급차량 등의 통행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구원 루트의 길을 트는 것. 당시 정비국 매뉴얼에는 기재가 없는 활동으로, 주의환기를 위해 최초의 명령서 안에서 특히 이것을 지시하고 있다.
4 국장의 메모 3월12일6시16분 기재
“빗 모양” 계개로의 최초 선정
3월12일0:15의 “도로 계개”의 결정을 받아, 도로조사관에게 계개로(啓開路) 선정이 지시되었다. 도로조사관은 도로상황을 조사하여, 내륙에서 태평양연안 지역으로의 계개로 원안을 작성. 이 표가, 그때 작성된 최초의 계개로 안이다.
동일 이른 아침, 도로조사관이 국장에 대해 계개로 안을 보고했다. 손으로 쓴 메모는 그때 국장이 써넣은 것이다.
≪메모 개요≫
- 이 지면에는, 이 시점에, 국도 4호와 도호쿠 자동차도를 종축으로 삼고, 여기에서 태평양연안지역까지 도달 가능한 횡축이 되는 국도 루트가 9개 있다는 것이 나타나 있다.
전체의 작전이미지로 머리에 떠오른 “빗 모양”이라는 문자를 처음으로 기록했다. - 계개로로서 통행 가능한 9개의 국도 루트에 추가하여, 이 시점에서는 통행 불능이지만, 우선해서 길을 터야 할 루트로 새로이 3개 도로를 선정. 합쳐서 12개 도로로 정하여, “빗 모양”의 계개로를 승인했다.
- 이 시점에서는, 피해가 큰 리쿠젠타카타 시와 미나미 산리쿠 정에 도달하는 국도의 길 트기가 가능한지 어떤지 정보가 없어 선정을 보류했지만, 다음날 13일에는 이 도로들의 길 트기에도 착수하기로 하여, 4개의 국도 루트를 추가. 합계 16개를 계개로로 선정했다.
- 이 시점에서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폭발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 대응도 상정하여 “현도(縣道)를 거쳐 원전에도 접근 가능”이라는 메모를 기록했다.
국도 4호와 도호쿠 자동차도를 종축으로 삼고, 거기에서 태평양연안으로 이어주는 횡축이 되는 국도의 길을 트는 작전의 기본적인 형태에서, 국장은 “빗 모양”이라는 말을 메모했다.
5 국장의 메모 3월12일17시13분 기재
화상회의용 “3월12일 밤 상황” 메모(1페이지 째)
3월12일21:00부터 열린 국토교통대신과의 화상회의 준비로, 12일의 17:13부터 쓰기 시작한 메모.
12일에는 정보도 모이기 시작해, 숫자가 기입되어 있는 것 외에, 대신과 국토교통성의 지원에 대한 사례의 말 등도 기록되어 있다.
≪메모 개요≫
- 메모 ①은, 도호쿠지방 정비국의 상황을 보고하기 위한 것. 직원의 안부는 99.4% 확인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21명의 안부를 몰라 마음이 쓰인다고 기록되어 있다. 직원가족의 안부확인은 77%에 머물고 있으며, 그뿐 아니라 희생자도 확인되어 “통한사”라는 문자가 기록되어 있다. 또 식료가 손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 있다는 것, 비축 식료를 주민에게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 메모 ②에서는 재해대응상황을 정리. 이 메모에 의거하여, 태평양연안의 국도는 확인된 것만으로도 40군데나 교통불능 구간이 있기는 하지만, “빗살”에 해당하는 국도 13개 중 11개에서 이미 연안까지 길이 트였다는 것을 보고. 잔해에는 시신이 포함되어 있어, 상상도 할 수 없는 사태라는 것을 덧붙이고 있다.
- 산리쿠 종관도(縱貫道)에 대해서는, 1주일 전인 3월5일에 갓 개통한 가마이시 야마다 도로도 포함해, 모든 개통구간에서 큰 피해가 없다고 기재. 이에 대해서는, 좋은 소식으로 보고.
종축을 이루는 국도 4호와 도호쿠 자동차도의 통행은 신속히 확보되었다. 집중해야 할 계개 대상은, 횡축이 되는 연안부로 이어주는 도로였다. 빗 살에 해당하는 부분에 집중하는 의미로 “빗살”이라는 말이 사용되어, 나중에 “빗살 작전”이라는 작전명으로 이어져 갔다.
6 국장의 메모 3월12일17시13분 기재
화상회의용 “3월12일 밤 상황” 메모(2페이지 째)
마찬가지로, 3월12일21:00부터 열린 국토교통대신과의 화상회의용 준비로, 12일의 17:13부터 쓰기 시작한 메모의 후반.
≪메모 개요≫
- 많은 지자체가 재해로 피해를 입어, 통신수단조차 없는 것과 리쿠젠타카타 시는 시청 자체가 피해를 입어, 급식센터에 재해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있는 등, 지자체의 곤경이 판명되어, 그 응원을 하고 있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 아오모리,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의 현청에 고위급 리에종 17명을 파견했고 그 외에 이미 12개 시정촌에 21명의 리에종을 파견한 것, 위성통신차 등의 장비로 지사와 시정촌장과 직접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것이 기재되어 있다.
- 이와테현의 닷소지사로부터는 직접 지원요망을 받아, 우선 가마이시 시에 재해대책차 6대로 구성된 시스템을 파견한 것, 재해를 입은 후쿠시마 현청에도 같은 시스템을 파견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
“12개 시정촌에 21명 파견”
지금까지 리에종의 파견처는 현청과 자위대였는데, 이번에는 태평양연안부의 시정촌이 괴멸적 피해를 입은 것을 감안하여 이례적인 일이지만 시정촌에도 훈련을 받은 리에종을 보내고 있다. 이 시점에서 12개 시정촌에 21명, 피크 시에는 31개 시정촌에 96명이 파견되었다.
7 회의자료 3월13일22시30분 화상회의에서 사용
계개상황을 나타내는 자료
3월13일22:30부터의 국토교통대신과의 화상회의에서 사용한 자료.
이 시점에서의 계개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보충 해설・메모 개요≫
- 본 자료는, 3월13일 밤 시점에, 미야코 시 오모토, 리쿠젠타카타 시, 이시마키 시 이외의 연안 시정촌으로 이어주는 계개로는, 거의 다 길이 트였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 연안부 남북을 잇는 종축인 국도 45호는, 아직도 상황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곳이 많이 있으며, 리쿠젠타카타 시, 게센누마 시, 미나미산리쿠 정, 이시마키 시 등, 특히 피해가 크다고 생각되는 지역에서는, 이 시점에 통행 불가가 확인되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 손으로 쓴 문자는 국장이 기록한 것. 어제 11개였던 계개로가 13개로 늘었다는 것, 연안역을 세로로 이어주는 45호 길을 틀 수 있으면, “빗살 모양”에서 “사다리 모양”으로 모두 이어지게 되니, 그것을 목표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기록되어 있다.
8 회의자료 3월14일13시00분 화상회의에서 사용
계개상황을 나타내는 자료
3월14일6:00 현재 확인된 도로 계개상황을 정리한 그림. 단, 항구에 대해서는 하루 전인, 3월13일6:00 시점의 정보가 집약되어 있다. 이날 13:00부터 있었던 국토교통대신과의 화상회의에서 사용. 이 시점에서의 계개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보충 설명≫
- 이와테현의 리쿠젠타카타 시에서 후쿠시마현의 후타바 정까지에서 통행 불가인 곳이 있기는 하지만, 그외에서는 국도 4호에서 연안 시정촌으로 이어주는 계개로 14개가 거의 길이 트인 것이 나타나 있다.
- 이용이 가능할 것 같은 항구로, 하치노헤, 구지, 미야코, 가마이시, 오후나토, 이시마키, 시오가마, 소마, 오나하마가 확인된 것도 나타나 있다.
9 회의자료 3월16일11시30분 화상회의에서 사용
계개상황을 나타내는 자료
3월15일17:00 현재에 확인된 도로 계개상황을 정리한 그림. 다음날 3월16일의 11:30부터 행한 국토교통대신과의 화상회의에서 사용. 이 시점의 계개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보충 설명≫
- 리쿠젠타카타 시로 듷어가는 도로의 계개가 완료되어, 전부 15개의 “빗살” 도로의 길이 트인 것이 나타나 있다.
- 3월14일 시점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부분과 확인되었지만 통행 불가의 부분이 많았던 국도 45호선도 대부분이 통행이 가능하게 된 것이 나타나 있다.
- 리쿠젠타카타 시에서 미나미산리쿠 정에 걸친 구역에서는, 8개 다리가 유실되어, 그 중 5개에 대해 급히 우회로 확보, 응급교 설치 등의 대책을 실시하는 것으로 하고, 그 방법과 우선순위에 대해 생각한, 손으로 쓴 메모가 남아 있다.
대규모 잔해에 막혀, 당초 예정하고 있던 국도 340호의 길 트기를 단념하고, 대신에 리쿠젠타카타 시도(市道)의 길을 터서, 국도 45호로 이었다.
미나미산리쿠 정에서 리쿠젠타카타 시 사이의 국도 45호에서는, 8개의 다리(실제는 7개 다리)가 낙교로 파악. 이 다리들의 길이, 우회로의 유무, 우선도, 응급 가설교의 가능성, 을 고려하여 복구방침을 생각한 흔적이다.
10 기자발표 자료 3월18일14시부터의 기자발표 자료
빗살작전 종료의 알림
2011년(헤이세이 23년)3월18일의 기자발표용으로 작성된 자료. 7일이 걸려, 당초 예정했던 16개 루트 중 15개 루트의 길 트기를 완료한 것, 금후의 활동은, 도로 계개에서 본격적인 복구작업으로 이행된다는 것을 보고.
≪보충 설명≫
- 계개를 예정하고 있던 16개 루트 중, 계개를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던 1개 루트는, 후쿠시마현 후타바 정으로 이어지는 국도 288호이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사고가 계개를 단념한 이유이다.
- 센다이 시에서 아오모리현 경계까지의 국도 45호의 통행가능구역이, 100%가 아니라 97%에 머물고 있는 것은, 낙교와 대규모 토사 붕괴 때문에 부분적으로 조기 계개를 할 수 없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 “빗살 작전”에 참획한, 지역의 건설업자 등으로 구성된 팀은, 전부 52개 팀이다.
11 기자발표 자료 3월18일14시부터의 기자발표 자료
빗살작전 종료의 알림 참고자료
2011년(헤이세이 23년)3월18일의 기자발표용으로 작성된 참고자료의 1개. 심대한 쓰나미 피해를 입은 연안부로 이어주는 도로 계개를, 어떤 단계로 진행해 왔는지 알기 쉽게 전하기 위한 자료.
12 국장으로부터의 편지 6월 말일 사례 편지
지원에 대한 사례
재해발생에서 약 3개월이 경과한 6월 말에, 국장이, 관계각처를 향해 쓴 지원에 대한 사례 편지. 다음과 같은 4종류의 사례 편지를 작성.
여기에서는, 마지막에 쓰인 직원에 대한 사례 편지를 소개.
- 물자 등을 지원해 주신 일반 분들에 대한 사례.
- 격려해 주신 국회의원 등에 대한 사례.
- 리에종, 텍 포스(TEC-FORCE), 재해대책기계 조작 등, 장기에 걸쳐 다방면으로 지원해 주신, 도호쿠지방 정비국 이외의 각 정비국에 대한 사례.
- 도호쿠지방 정비국 약 3000명의 전 직원에게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