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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F

후방 지원 활동 내륙에서 연안 지역을 지원하다

심각한 쓰나미 피해를 입은 그 당시 연안 곳곳에서 내륙으로부터 재해지역을 지원했다

도노시의 사례

연안 재해지의 생명을 구하고, 지키고, 이어간다.
그것이 바다가 없는, 쓰나미가 오지 않는, 내륙에 있는 도노가 완수해야 할 역할이다!

3월 11일 15:00
① 지진 발생에서 불과 14분 후, 구원부대의 후방지원기지로서 도노 운동공원을 즉각 개방

지진 발생 순간 도노시도 크게 흔들렸다. 강하고 긴 흔들림이었다. 청사 1층은 큰 손상을 입었다. 붕괴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주차장에 천막을 치고 재해대책본부를 설치했다. 시장은 직원들의 무사를 확인하고, 시내의 상황 확인을 지시함과 동시에 겨울철 폐쇄 중이었던 도노 운동공원 개방을 지시했다. 그 지시는 지진 발생에서 불과 14분 후였다. 자위대, 경찰, 소방 등 구명ㆍ구원에 관련된 각종 부대가 들어올 것으로 판단했다.
그 후 시내에는 인명 관련 피해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시청사는 파괴되었고, 정전이 되어 몹시 얼어붙은 밤의 어둠 속에서 훈련대로 육상자위대 선발대가 도착했고, 이어서 자위대 차량과 대형 헬기, 경찰 및 소방차량 등이 속속 집결했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후방지원거점"으로서의 역할을 맡게 된 도노 시민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도노 운동공원(구원부대 후방지원기지)으로 집결하는 움직임

3/11
3/12
초동기에 집결한 각종 조직의 인원: 3,500명

3월 12일 1:40 지진 발생에서 11시간 후
② 심야에 갑자기 들어오는 SOS에 대해 즉각 대응하는 "후방지원" 활동이 시작되었다.

날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 대책본부에 한 남성이 달려왔다.
"오쓰치 고등학교에 500명이 대피해 있다. 물도 식량도 전혀 없다. 어떻게든 도와 주길 바란다." 그 남성은 산불이 발생한 가운데 야밤 중에 고개를 2개나 넘어서 여기까지 도착했다. 해안 재해지로부터의 최초의 비통한 SOS였다. 카메라에는 끔찍한 피해 참상이 담겨져 있었다.
시에서는 즉시 담요, 비상식량, 물, 등유 등의 물자를 준비해 12일 4시 50분, 동이 트자마자 시 직원 2명을 현지로 보냈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가장 먼저 받은 보고는 이것이었다.
이 지원 요청을 계기로 다음날 13일, 시 재해대책본부와는 별도로 "도노시 동일본 대지진 후방지원활동본부"를 설치해 시 직원과 시민이 일체가 된 후방지원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③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재해지로부터의 "요청"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 지원을 실행

시에서는 재해를 입은 지자체의 지원 요청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조사대를 파견했다. 독자적으로 식료 공급, 이재민 수용도 시작했다. 이것은 재해지로부터의 요청을 전제로 한 당시의 "재해구조법"이 정한 틀을 뛰어넘은 대응이었다.
이후 직원들은 밤낮으로 정보를 수집해 매일 아침 시 직원과 시민들로 구성된 구원대가 재해지로 향했다. 파견된 구원대는 아침과 저녁 두 차례 현지 상황을 보고해 반드시 정보를 공유했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피해 지역 지원을 새롭게 다짐했다.
그리고 시민들이 계속 만들어 보낸 주먹밥은 재해 발생일로부터 29일 동안 14만 2,400개에 달했다. 지원 물자와 사람들을 계속 보냈다.

요충지ㆍ도로망의 허브

도노시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면 반경 50km 권내에 연안 지역의 미야코시에서 리쿠젠타카타시까지 6개의 시정, 내륙의 모리오카시와 하나마키시, 기타카미시, 오슈시가 들어온다. 연안 지역까지 헬기로 약 15분, 차로 약 1시간 권역이다. 또한 도노시에는 4개의 국도가 지나가고 있으며, 내륙 도시와 연안 시정촌을 잇는 교통의 허브이기도 하다.
오래 전부터 내륙부와 연안부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던 이곳에는 1896년의 메이지 산리쿠 지진 쓰나미 발생 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피난해 왔고, 피해지와 가깝다는 점에서 구호본부가 설치되었다. 도노시의 역사를 보면, 당시 도노시의 전신에 해당하는 도노마치가 이와테현 경찰과 함께 구호활동을 전개했고, 모든 소와 말, 차량까지 총동원해 식량과 기타 생활물자를 수송했던 점, 가마이시와 오쓰치의 구호를 결의하고 위문금을 준비했으며, 상황 시찰을 위해 의원과 담당자를 파견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생명을 지키는 싸움을 실감. 도움이 된 두 번의 훈련

2007년
내륙부에서 처음으로 연안부의 쓰나미 재해를 가정한 "이와테현 종합방재훈련"이 실시되었다.

통상적으로는 개최하는 지자체가 재해를 입은 것으로 가정해 실시되는 것이 방재훈련이지만, 도노시가 개최한 이 해의 훈련은 도노시를 연안 지원의 중계구원기지로서 설정했다. 현의 종합조정소를 설치하고, 의료 구원과 파견, 구원물자의 구분과 수송 훈련이 실시되었고, 후방 지원의 유효성과 필요성이 검증되었다.

2008년
도호쿠 6현의 전 자위대가 참가해 사상 처음으로 지진 대응 훈련 "미치노쿠 ALERT 2008" 실시

당시 30년 이내에 99%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던 미야기현ㆍ산리쿠 앞바다를 진원으로 하는 지진 쓰나미에 대비한 자위대의 대규모 훈련에서는 도노 운동공원을 중심으로 실제로 집결훈련 등을 실시했다. 도노시의 위치나 도노 운동공원 넓이의 필요성이 실증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2011년 3월 11일, 현실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