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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D

현지 건설업자가 "생명의 길"을 뚫다!

여전히 대형 쓰나미 경보가 발령되어 있는 가운데,
현지 건설업체 사람들이 "피해지로 가는 길"을 뚫었다.

병원으로, 다로 지구로, 이 길을 뚫어야 한다!

사례1: 미야코시

지진·쓰나미 발생 다음날 3월 12일 정오 전 
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작업"에 모두가 갈등하면서 필사적으로 임했다

미야코오하시 다리 위에는 국토교통성 도호쿠 지방정비국 미야코 유지 출장소의 A, 국도유지관리업자인 B, 그리고 작업원들이 있었다. 다리 위에서는 수많은 집들과 여러 대의 차량들이 겹겹이 쌓이고, 토사로 새까맣게 된 도로가 보였다. 그 길을 배가 가로막고 있었다.
헤이가와 강에 놓인 미야코오하시 다리를 건너 시청 방면으로 가면 연안을 관통하는 국도 45호와 모리오카로 이어지는 국도 106호가 교차한다. 이 장소를 뚫지 않으면 지역재해 거점병원인 이와테 현립 미야코 병원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없다. 괴멸적인 피해를 입은 다로 지구로의 긴급차량이 들어갈 길이 없다.
3월 11일, 쓰나미가 있었던 그 밤에 우회로를 구사해 유지관리구 내를 돌아 다로 지구의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던 B는 이 길을 뚫어야 하는 중요성을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헤이가와 강에는 수십 cm의 쓰나미가 계속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다.
"최소한의 교통이라도 확보하고 싶다"고 A는 말했다. "하지만 작업을 하라고 제가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은 질 수 없다"고 B는 말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함께 해 주지 않겠습니까?", "… 작업원들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라고 B는 대답했다.

②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이건 누군가 해야만 하는 거구나.'라고

"여기를 통해 미야코 병원이나 다로까지 국도를 연결시키고 싶다. 길이 없으면 병원에도 가지 못한다."고 B는 말했다. 작업원 C는 생각했다. '이건 아무래도 누군가가 해야 하는 일이구나.'라고. 그리고 굴삭기 시동을 걸고 토사로 새까맣게 된 국도 45호로 내려갔다…. 긴장감으로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만약 살아 있는 사람이 이 안에 있다면…."

3월 12일 17:00
③ 뚫린 1차선, 그 길을 통해 긴급차량이 재해지로 달렸다

여진이 있을 때마다 일단 대피하고, 잠잠해지면 곧바로 현장으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하면서 작업을 진행했다. 집을 찾거나 가족을 찾으러 가까이 다가오는 이재민도 있다. 작업은 3시간, 4시간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오늘 중에 이곳을 뚫어 둔다면 다음날 아침부터 자위대가 다로 지구에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주변은 점점 어두워졌지만, 그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12일 17시, 길은 여전히 토사로 시커먼 상태로 비록 1차선뿐이었지만 긴급차량이 지날 수 있는 통로가 만들어졌다. 뚫린 길을 긴급차량이 달려 지나갔다. 다로 지구로 가는 길이 열린 순간이었다.

지역의 도로는 우리 힘으로 복구한다!

사례2: 가마이시시

3월 12일 5:00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건설업자뿐이다.
우리밖에 없잖아?라는 마음이 모두에게 있었다.

피해가 컸던 가마이시시 우노스마이 지구에서는 현지 건설업자들이 자율적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었다. 우노스마이 지구의 D는 구리바야시 지구의 E 등과 함께 전날 밤부터 지역 건설업자들에게 말을 걸고, 기재를 모아 다음날의 작업에 대비했다. 다 함께 결정했다. "아침부터 나가자!"
작업원과 예전에 작업원이었던 사람들이 12일 새벽에 모였다. 눈앞에는 쓰나미로 인해 가옥이 쓸려온 길에 전신주가 넘어져 전선이 엉켜 있고, 그 옆에서는 프로판 가스의 가스통이 쉬익쉬익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은 현지 유지들뿐이다. 긴급차량이 줄을 서 있었다. 하지만 차량이 통행할 수 없다. 이 앞으로는 걸어서 갈 수밖에 없다. 현도를 뚫어 통행할 수 있는 산리쿠 고속도로(국도)까지 올라가야 한다. 작업은 오후에도 계속됐다. 하지만 밀려오는 잔해물의 양은 너무나 많다. "그렇다면 여기에 비탈길을 만들자!"
산리쿠 고속도로의 6~7m 아래에 있는 현도 옆에서 흙을 쌓아올려 비탈길을 만든다. 잇달아 사람들이 가세했다. 중장비가 3대, 4대 모였다. 밤을 새워 작업이 계속되었다. "국도도 현도도 없다. 시가지로 가는 길, 그리고 오쓰치초로 가는 길을 뚫자."
3월 13일 아침, 비탈길이 완성되었다. 그동안 정체되어 있었던 교통이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했다.